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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이 현란한 방송국 스튜디오에 복서가 한 명 서있다. 복서는 오락프로그램 세트장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지만, 그의 존재는 도통 이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다. 복서에게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위한 세트장은 낯설다. 아니, 정확히 말해 이 공간은 그를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니기에 그에게 낯설 수밖에 없다. <Goodbye Stranger> 시리즈 2와 3에서 박현두는 TV 세트장, 대규모 공연장, 해변가, 축구장 같은 대중적 오락공간을 주로 촬영했다. 그는 이런 스펙터클한 공간이 텅 비어 있는 시간을 틈타 그 널찍한 공간을, 규모나 내용 면에서 어울리지 않는 한 개인과 함께 포착해냈다. 잘 정비된 축구장 사이드라인에 서서 안으로 들어가길 주저하는 조기축구회 회원은 TV 세트장의 복서와 조금 닮았다. 복서는 관중의 환호와 스포트라이트를 갈망하지만 그에겐 그걸 얻어낼 자신이 없다. 그의 꿈은 현실과 너무 멀리 떨어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가 살짝 벗겨진 아마츄어 축구선수는 비록 축구장에 있긴 하지만 그곳을 자신의 그라운드로 만들진 못할 것 같다. 그 자신이 스스로를 축구장으로부터 소외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Goodbye Stranger 3>에 등장하는 오케스트라 공연장의 페이지터너나, 아이스링크의 어린아이, 해변가의 치킨배달부는 모두 축구장의 아마추어 축구선수처럼 자신이 속하고자 하는 공간에 위치하고 있으나 자의든, 타의든간에 그곳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인물들이다.

양립불가능한 두 항의 병치는 박현두의 후속 시리즈에서도 지속된다. 토론프로그램 세트와 탁구선수는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모순적이다. TV 세트장에서 탁구를 한다는 사태 자체가 우리에게 상식적이지도 않거니와, 사유(언어)와 행동, 진지함과 경쾌함 같은 대립항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호모순적인 두 항의 아이러니한 공존은 어쩌면 현대적 삶의 전형적인 양태일지 모른다. 전지구적 소통을 위해 개발된 TV 중계 시스템. 하지만 일방적 소통체계에서 현대인은 오히려 소통의 부재를 경험한다. 텅 빈 음악당의 페이지터너는 그 공간에 존재하는 유일한 인물이지만, 공연이 시작되면 그의 존재는 청중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작가는 이와 같은 삶의 아이러니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인생이 부조리하고 아이러니하다고 말한 이들이 있다. 가령 사뮈엘 베케트는 그 유명한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부조리한 인생의 상황을, 자신들이 무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기다림의 순환구조에 갖혀있는 인물들을 통해 그리고 있다.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를 실존철학적 사유의 귀결이 아니라 그런 사유를 촉발시킨 감수성이라고 규정한다. <이방인>의 뫼르소는 부조리의 감수성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인물이다. 어머니가 죽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리와 섹스하고 싶은 나의 살아있는 욕구를 부인할 수가 없다. 태양이 너무 눈부셔서 난 아랍인에게 총을 쐈다. 그것이 진실이기에 “실수였다”는 거짓말로 사형을 회피하지 않았다… 인간의 욕망 자체는 비이성적일 뿐, 부조리하지 않다. 진실과 거짓, 합리와 비합리, 정상과 비정상을 가름하는 세상의 기준이 부조리하고, 그런 세상에 내던져진 개개인의 인생이 부조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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