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선생의 부고는 애독자로서 적잖은 충격이었다. 더우기 작년 100주년기념교회 목요강좌에서 강연하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서 안타까움이 더욱 컸다. 아직 더 오래 사시면서 좋은 글로 우릴 위로해주실 수 있는데... 작년에 하셨던 강연을 어제 다시봤다.



다시본 박완서의 양화진목요강좌에서 짠하게 다가왔던 여러가지 것들이 있다. 1. 우선 말문을 떼시면서 털어놓으셨던 말하기와 글쓰기의 차이에 대한 문인의 고민이 먼저 다가왔다. 내가 기호학을 하기때문에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을지 모르겠다. 2. 둘째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시종일관 즐겁게 회상하시던 보편적인 사랑에 대한 감사, 특히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진한 추억이었다. 3. 세째로는 선생의 개인사, 가족사와 관련한 말씀이셨지만 아픈 시대를 함께 통과해오신 분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민족사에 관한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4. 마지막으로 선생의 모든 이야기와 말투에서 배어나던 예술에 대한 존경심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박수근 얘기가 많았다.)

[박완서 <나목>의 소재가 된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1965)]
내게 특히 다가왔던 것은 네번째 것이다. 박완서선생은 가난하게 죽었던 화가 박수근에 대해 길게 회상하셨고, 이와 대조적으로 화가덕분에 치부했던 화상들을 언급하시며 "그것들"이라고 말했다. 문인의 실언 속에서 속물적인 것에 대한 혐오가 묻어났다. 박수근의 작품을 가진게 있느냐는 질문에 선생은 "없다"는 대답과 함께, 오늘날 국내최고가가 된 작품들 말고, 미군PX 시절 퇴짜맞았던 그림들과 스케치들을 갖고있을걸 하는 후회를 털어놓으셨다. 물론 이것도 "그것들"의 소유욕과는 다른차원의 관심에서 하신 말씀이셨다.
소박하고 정갈하셨던 문인은 글을 쓰지 않을 땐 부지런히 살림을 하고 "정리"를 하신다고 하셨다. 어느덧 여든이라 지저분한 것들을 당신 손으로 치우신다는 말씀이셨는데, 지금 다시보니 이 또한 짠했다. 그 말씀하시고 1년도 안되어 가신 격이 되어서 말이다. 1년전엔 저렇게 건강하시던 분이 돌아가셨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 그 모습대로 편히 잠드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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