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HOW" - 키가 넘 크거나 작은 애인과 키스하는 방법 초록상자

난 wikipedia를 애용한다. 내가 할 줄(읽을 줄) 아는 거의 유일한 외국어인 영문 위키를 잘 사용하는데, 이렇게 된 이유는 순전히 구글이 위키피디아를 맨 꼭대기에 찾아주기 때문이다.

암튼, 난 위키미디어에 비교적 친숙하게 되었고, 그래서 iGoogle에 바로 뜨는 컨텐츠 중 하나로 "wiki HOW"를 선택해 놓았다. 맨날 "how to ~~"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전달해 주는데, 오늘의 "하우투"는 걔중 눈에 띄었다.

How to Kiss Somebody Who Is a Different Height

링크 따라 들어가보니, 총 6가지의 키 차이가 많이 나는 연인들이 키스하는 방법이 나왔다. 재밌는 팁도 붙어 있다. "키가 큰 파트너가(여자일 수도 있겠다) 손이나 팔로 작은 파트너의 머리를 떠받쳐 주되 목을 누르지는 말아라. 이런 일이 잘 일어나는데, 무드깨는 지름길이다~" ^^

위키하우에서 아이폰 앱을 받을 수도 있고, 물론 트위터로도 바로 연결된다. 간만에 위키하우를 눌러서 방금 알게된 사실이다.

IT(information technology)가 가져온 우리 일상의 변화는 참 놀랍다. 아이폰이나 트위터 얘기가 아니라, 백과사전을 특정 저자 없이 공동체적으로 집필하는 세상이 된 것 말이다.

공교롭게도 지금 설대도서관에서는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백과사전>展을 하고 있다. 물론 그간 무려 20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무료로, 저자없이(저작권에 대한 주장없이) 백과만학적 지식을 만인에게 배포하는 위키피디아는 디드로와 그의 친구들의 계몽주의 정신을 100%, 아니 200% 실현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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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film & media

퇴근하면서 주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는다. 모.. 나야 출퇴근시간이 정해져있지 않은 비정규직 정신노동자지만, 나름 받은 돈값하느라 비교적 규칙적으로 연구실과 집을 오가고 있다. 암튼, 내가 집으로 떠나오는 시간은 교통이 붐비기 직전인 5시 반에서 6시 사이. 고로 대체로 난 집으로 오는 길에 배철수의 목소리를 듣게된다.

 내가 기억하는 철수아저씨는(내가 아저씨라 부를 정도로 나이가 많은데, 지금도 이렇게 인기가 많다니!) 송골매에서 기타치던 사람이다. 가끔 노래도 부르던 삐딱해보이는 아찌.. 근데 벌써 20년이나 DJ생활을 했단다. 일전에 서점에서 그와 작가가 공동집필한 <Legend>를 대충 훑어봤다. 햐~! 훌륭한 락음악사책이다. 그야말로 레전드들이 다 모였다. 그래서 결국 (비록 중고지만) 한권 구입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레전드는 거기 수록된 숱한 아티스트들이 아니라, 배철수 아찌다. 20년간 방송하면서 꼿꼿이 지켜온 고집이 전설이고, 그가 남긴 숱한 노래들도 전설이다. 20년간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별루 쉬운 일이 아니다. 

초창기에 음악캠프를 들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멘트 중 하나는 "자, 광고듣겠습니다" 하고 주저 없이 던지는 말이었다. 보통 다른 진행자들이 "잠시 전하는 말씀... 어찌구" 하면서 조심스럽게 CM을 트는 것과는 아주아주 달랐다. 거칠다고 해야할지, 과감하다 해야할지 헷갈리는 대목이었다. 젊은 시절 히트시켰던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는 노래와 어쩜 그렇게 잘 어울리는 진행이었는지... 그렇게 남의 눈, 남의 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던 것이 오늘날 배철수란 브랜드를 창출하게 된 비결 아닌 비결이었을 것이다.

두어 달 되었나? 어김없이 배철수의 방송을 들으면서 퇴근하고 있는데, '오늘은 뭘해 먹지?'를 생각하던 나에게 꽂히던 멘트가 있었다. 어떤 남학생이 "아찌, 정말 멋져요, 떠올리기만 해도!"라는 문자를 날렸단다.(여학생이었는지도 몰겠다.) 메시지를 읽자마자 배철수 왈, "잘못 보신 겁니다." 우리의 아찌는 그 특유의 말투로 조금도 망설임 없이 말했다. 하하하. 역시 레전드 맞다.

[* 웹서핑하다가 장기하가 부른 "세상모르고 살았노라"를 찾았다. 송골매에게 바치는 오마쥬란다. 배철수 느낌이 확 나면서도 장기하스럽게 잘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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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 Passage film & media


[* 이것도 펜스테잇에 있던 2005년도 3월 18일에 쓴 글]

PSU 리포트.... 몇번짼지 모르겠지만. 어젯밤에는 유명한 필름아티스트 (그냥 영화감독이라하기엔, 넘 아티스틱하다), 트린민하(Trinh Minha)의 새 영화, <Night Passage>(2004)를 보았다. 밤 9시 반이라 포기하고 집에가서 쉴까 하다가 극장이 내 연구실에서 가까운 관계로 가보았다.

골치아픈 예술영화일거라고, 아니 전위 영화일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재밌었다. 주인공의 사랑하는 친구 나비는 한국인이었다. 실제로 배우도 한국인이고, 극중 이름 나비 역시 butterfly를 의미하는 한국말이었다. 트린 민하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베트남 출신이고, 현재 UC 버클리 여성학 교수이다.

현실과 꿈 혹은 환상의 혼합, 동서양의 문화의 혼성, 전통과 현대의 혼합 등등이 아주 컨템포러리해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건 그들의 영어가 단순하고 전체 내용도 단순해서 이해하는데 거의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

[* 요즘 디지털사진 관련 연구를 하고 있어서인지, 미디어쪽에 관심이 자꾸 늘어갑니다. 벌써 5년이나 지났지만, 인상적이었던 화면들은 아직 내 눈에 남아 있습니다. 밤기차를 타고 떠난 아이들, 그들이 만난 탈을 쓴 인물과 기묘한 춤(탈춤?)... 그저 몽환적이라고 하기엔 뭔가가 더 있었던 영화였죠.

베트남 출신의 감독이 동서양의 문화와, 꿈과 현실을 뒤섞는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해냈던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함 보고 싶기도 하군요. 트린 민하는 지금도 UC Berkeley 교수이고, 여성학, 포스트콜로니얼리즘(문화정치학), 영화학 등을 가르칩니다. 그녀는 영화감독이자 작곡가이고,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호주 등을 두루 누비며 강연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트린 민하의 홈피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세요~! 요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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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and Order film & media

[* Penn State에 있던 2006년 3월 14일 쓴 글이에요. 요즘엔 진득하게 앉아서 글을 쓰지 못하고 주로 옛날에 끄적거렸던 글을 퍼다 나르는군요. 바쁘다는 핑계로...^^]


지난 주말부터 TV series "Law and Order"를 여러 편 봤다. 종종 보던 드라마이긴 한데,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는 모르겠다.[꽤 인기가 좋다. CSI의 원조라고 해도 좋을, 과학수사 및 법정드라마다.] 난 이 법정드라마가 대사가 많아서 리스닝을 좀 늘려보겠다는 엉뚱한 야심을 갖고 종종 본다.

토요일엔 주로 치정사건을 다룬 다소... 뭐랄까 선정적인 시리즈들을 연달아 해줬다. [SVU series를 말함; 요즘 우리나라에서 주로 해주는 강간이나 유아성폭행 관련 에피소드로, 소재가 자극적인 만큼 인기도 높다.] 난 (역시 영어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모르는 단어를 메모하면서 봤는데...

[사실 난 법정드라마 광팬이다. 내가 주로 즐겨 봤던 에피소드는 Law & Order의 오리지널 시리즈인 맥코이 검사(Sam Waterston 분)가 나오는 시리즈였다. 선량하고 정의감 넘치는 맥코이검사와 형사들이 사건의 전모를 풀어헤치는 과정이 어찌나 리얼하던지! Law & Order는 스핀오프 시리즈들로 더 유명하다. 앞서 말한 Special Victim Unit외에 Criminal Intent가 유명한데, 국내에서도 <뉴욕특수수사대>란 제목으로 인기리에 방영했다. 모두 다 Dick Wolf가 감독한 것이다.]

[* Law & Order에 나왔던 캐스트들; 형사들은 바뀌어도 맥코이는 늘 샘 워터스턴이 했다. 맨왼쪽 아래의 하얀머리 아저씨가 맥코이검사다.]


할튼, 너무나 선량하게 생긴 형사아저씨들과 검사나리들이 복잡한 형사사건들을 풀어나가는 묘미가 나름대로 쏠쏠한 드라마였다. 법정드라마의 ER[Emergency Room]이라고나 할까? 물론 픽션이지만, 이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뇌를 리얼하게 다룬 것이 이 드라마의 뽀인튼거 같다.

<수사반장>처럼 사건이 항상 진리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정의가 승리하는 쪽으로 해결되진 않는다. [사실 "법과 질서"라 번역해야 할 Law and Order는 미국판 <수사반장>이다.] 사건을 다 처리하고 판결이 나고 나서 엉뚱하게 다른 사람이 범인이었다는 것을 알게되기도 하고, 뻔한 사건을 패소하기도 하고, 또...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검사가 정의의 칼을 휘둘러 시비를 올바르게(!) 가려내지만 때로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한편 안타까우면서도 짜릿했던 이 드라마의 묘미는 바로 이런 리얼리티에 있었다!]

야튼, 보이는 것, 알려진 것이 진실의 전모도 아니고... 다 알다시피 신문기사를 믿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고, 옳은 일을 하는 것 또한 단순히 도덕 교과서나 법조항에 충실하여 되는 일도 아닌... 할튼 사는 건 복잡하다. 이래서 미국사람들이 리얼리티쇼에 열광하나? ^^  

[* (무한도전같은) 리얼리티쇼는 별루 리얼하지 않지만 <로 앤 오더>는 정말 리얼하게 보였다. 특히 맥코이검사의 것은... 근데 지난 5월 시즌20을 마지막으로 이 드라마가 종영했다. 1990년에 시작했으니까 장장 20년이나 했던 거다. 맥코이검사가 파삭 삮은 건 세월의 흔적인 셈이다.

요즘에도 가끔 케이블에서 <로 앤 오더>를 보곤 하는데, 두가지가 아쉽다. 우리나라에선 맥코이 검사가 나오는 오리지널 시리즈를 안해준다는 게 첫번째 아쉬운 점이고, 드라마 끝날 때마다 "Directed by Dick Wolf"라는 크레딧과 함께 "우워~"하는 늑대 울음소리가 나오는데, 그게 잘린다는 게 두 번째 아쉬움이다. 참고로 "dick"은 "Richard"의 애칭이기도 하지만, 페니스의 속어이기도 하다. ^^;;

Law and Order site 중 요기가 젤 쓸만한 거 같군요. 전체 시리즈 에피소드 가이드랑 링크들이 유용합니다. 워터스턴이 연기한 맥코이검사는 시즌5부터 등장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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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의 시(Poetry)를 보다... A&VC criticism

[* 남편이 강추해서 어제 투표하고 나서 같이 보고 왔어요.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은 읽지 마시길... ^^]

시를 쓰고 싶은 한 여인이 있다. 미자(윤정희 분)는 꽃을 좋아하고 시와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주변의 소소한 것들에 관심과 애정이 많은 여인, 60대의 젊지 않은 나이에도 늘 멋지게 차려입기를 즐기는 여인이다. 사실 그녀의 남루한 삶은 시나 아름다움, 꽃단장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미자는, 이혼하고 대도시로 돈 벌기 위해 떠난 딸 대신 외손주를 키우고 있고, 변변한 수입이 없는 생활보호 대상자다. 하지만 동네 수퍼 주인집의 가사도우미를 하면서 근근히 생계를 꾸리고 있다. 도우미일을 하면서 반신불수의 주인집 시아버지(김희라 분) 목욕도 시켜줘야 했기 때문에 아마 다른 도우미보다는 좀 더 챙겨 받았을 것이다. 

시쓰기를 배우기 위해 문화원의 문학강좌를 찾아간 미자는 시인인 강사(김용택시인 분)의 말을 따라 "일상에서 시상(詩想) 찾기"에 몰두한다. "엄마는 꽃도 좋아하고 가끔 엉뚱한 소리도 잘 하니까 시인기질이 있어"라고 했다는 딸의 말대로 그녀는 시적인 감수성이 풍부하다. 그런데 사실상 미자는 좀 현실감각이 떨어져 보인다. 그녀는 의사가 "초기 알츠하이머 증상"을 진단해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외손주가 저지른 사건의 심각성도 크게 우려하는 것처럽 보이지 않는다. 외손주와 친구녀석들은 고작 중3인 주제에, 동료 여학생, 희진(세례명, 아녜스)을 돌아가며 강간했다. 그로 인한 고통때문에 희진은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살짝 제 정신이 아닌 것처럽 보이는 우리의 주인공은 외손주에 대한 질책도, 그의 장래에 대한 염려도 별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단지 죽은 희진 때문에 몹시 마음아파 하는 것처럽 보인다. 

갑자기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알고 보니 손주녀석 친구의 아빠다. 미자는 그를 따라 가해 남학생 아빠들의 모임에 간다. 3000만원을 위자료로 피해자에게 줘야 한단다. 그렇다면 1인당 500만원씩 내야 한다. 미자에겐 그것은 아주 큰 돈이다. 하지만 그녀는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조금씩 발동하고 있는 치매증상 때문에 자주 잊고 있는 것인지 외손주의 사건을 뒷전으로 한채 시상을 찾아 다닌다.

"시간은 흐르고 꽃은 시들고"

미자는 작은 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싯구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한다. 한때 남자깨나 울렸던 그녀가 이렇게 시든 것처럼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 속으로 사라져 간다. 미자는 붉은 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다른 학부형들이 아들들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는 동안, 그녀는 슬며시 밖으로 나가 빨간 맨드라미를 관찰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빨간 꽃은 또 장미와 동백이 있다. 장미는 시사랑 동호회의 시 속에서, 동백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으러 갔던 의사의 진료실에서 등장한다. 모든 사람을 (아무리 60대 중반이라 하더라도!) 절망에 빠트릴 치매 진단에도 미자는 "아, 나 동백꽃 좋아해요. 빨간 꽃은 '고통'을 의미한대요"라고 신이 나서 떠든다. 

사실 미자가 현실감각이 없는 여자가 아니다. 단지 속내를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그녀의 속내엔 무엇이 있나? 딸, 손주, 자살한 동네 여학생, 일주일에 한번씩 목욕시키는 회장님(김희라)... 에 대한 애정과 아름다운 것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더이상 시를 쓰지 않는 시대, 심지어 "시는 죽었다"는 시대에 이 촌스럽고 비현실적인 여인은 시를 갈구한다. 아니, 아름다움을 갈구한다. 하지만 외손주 때문에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그녀는 인생이 그닥 아름답지 않고 되려 추하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순간 시상이 펼쳐졌던 것 같다.

미자는 <아녜스의 노래>와 함께 하얀 꽃다발을 시인선생님께 바치고 사라진다. 흰 꽃은 '치유'를 의미하는 걸까? 죽음도 치유의 한 방편일 수 있겠다. (난 미자가 흰꽃을 헌사하고 강물에 투신했다고 생각한다.) 미자의 목소리로 낭송되던 <아녜스의 노래>는 어느덧 희진의 목소리가 되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가해 남학생 아빠 중 하나가 말한 것처럼 별로 예쁘지도 않은 여학생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해맑게 웃는 여학생은 흐르는 강물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 서있다. 영화 속의 아녜스는 두 명이었다. 미자와 희진, 두 명의 아녜스가 주인공이었다.

또 다른 두 아녜스가 떠오른다. 윤석화가 오랫동안 열연했던 <신의 아녜스(아그네스)>의 아녜스. 그것은 희진이다. 참고로 성 아녜스는 순결과 소녀의 수호성인이다. 또 밀란 쿤데라의 <불멸>에 나오는 아녜스가 있다. <불멸>은 액자소설이다. 소설 속의 소설가는 스포츠센터에서 우연히 목격한 할머니급 아줌마(딱 미자 나이다!)의 수줍은 여성적 몸짓에서 '아녜스'라는 주인공 캐릭터를 창조한다. 소설 속의 아녜스는 40대의 비교적 젊은 여인으로, 마치 미자처럼 '예쁜 것,'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막연하게 선량한 삶을 추구하는 다소 비현실적 캐릭터다.

어쨌든, <시>에 등장하는 두 아녜스는 한번도 만난 적 없지만 시공을 초월하여 하나가 된다. 그녀들에게 물어보자. 인생이 아름다운가? 아니다. 인생은 고통스럽고 슬프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녜스의 노래>가 나왔겠지... 시상을 찾아 헤메던 미자가 변화하는 과정은 자못 흥미롭다. 막연히 인생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미자가 자신에게 성적(sexual) 요구를 해오던 회장님에게 돌아가 자선(?)을 베풀 때, 아니 강가에서 추적추적 비를 맞으면서 자선을 베풀 결심을 할 때, 아마도 그녀는 문득 "인생은 얼마나 추하고 불쌍한가" 생각했을 것 같다.

피해자와 가해자, 남자와 여자, 가진자와 못가진자, 누가 더 불쌍한가? 양자를 구별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해 보인다. 우리는 모두 불쌍하고 위로가 필요한 인생들이다. 시를 쓰는 사람들이나 쓰지 않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시쓰기를 우롱하는 사람이나 다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아녜스의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다. 아래에 시를 옮겨 본다.

<아녜스의 노래>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놀랍게도 이 시는 이창동 감독이 쓴 거란다. 포스터의 '시'라는 글자도 본인이 쓴 거고... 이창동 감독께 무한한 존경을 표한다.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시(poetry)를, 영화를 만드신 분께 말이다. 그렇지만 난 좀 다르게 말하고 싶다. 인생은 고통이고 예술은 치유라고.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괴롭고 추하지만 예술은 아름다울 수 있다고. 아름답다는 것은... 포스터에도 써있듯이 "우리의 가슴을 두드리는 것"이고, 고통스러운 삶에 치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창동은 네말이나 내말이나 똑같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2009년 1월 <씨네21> 정한석과의 인터뷰에서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아름다움의 의미, 예술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창동의 생각이 내 생각과 좀 다른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미자가 회장님에게 돌아가 자선을 베풀던 장면에서 나는 문득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가 떠올랐다. 니나가 성불구자(라고 스스로 생각하던) 노교수(헤르만이었나? 잘 생각 안난다)에게 찾아가 잠자리를 해줬던 장면이 연상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때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니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돌아보니 미자와 니나의 자선행위는 치유행위였다. 그런데 미자는 뒤늦게 자신의 선심을 매춘으로 전락시킨다. 물론 이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 장면은 우리 인생의 불가피한 고통과 추함을 오히려 역설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녜스의 노래>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데도 나는 꺼이꺼이 우느라고 일어나질 못했다. 남편이 물었다. "미자가 너무 불쌍하지?" 내 대답, "아니야. 인생이 다 불쌍하고, 너무 슬퍼..." 그 슬픔의 깊이를 윤정희가 담담하게 잘 소화한 것 같다. 구본창이 찍어준 포스터가 그녀의 아우라를 배가시킨 것 같기도 하지만... 이건 단지 여자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고, 죽은 전직 대통령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감독 본인에겐 어떤 의미를 가질지 난 모른다.) 인간의 보편적 감수성을 전달하기 위해 감독이 설정한 캐릭터 양미자역엔 관록있는 배우, 윤정희가 정말 제격이었다. 그래서 이창동이 윤정희의 본명, '미자'를 주인공 이름으로 택했겠지... 여하튼, 오랫만에 가슴을 두드리는 영화 한편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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